'혐오의 궤도를 이탈하라'라고 쓰인 검정색 세로형 배너 뒤로 파란 하늘과 초록빛 나뭇잎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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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27회 서울인권영화제 2일차 해가 밝았습니다. 어제의 비바람은 온데간데없이 맑게 갠 하늘 아래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나부끼기도 합니다. 약간의 찬바람이 감도는 이튿날 아침,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유쾌한 준비를 다시 한 번 이어갑니다.
저마다의 뜻을 가지고 광장에 모여 도란대는 목소리들. 이 사이로 본격적인 상영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K-ALMA-Q>부터, <WTO/99>,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 <한강가에 모여>, <쪽>,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 <새와 함께 당신에게>, <聯; 잇닿을 연>까지 여덟 편의 상영작과 함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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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MA-Q 관객과의 대화 장면. 다목적홀 무대 위에 왼쪽부터 차례로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나영, 수어통역을 하고 있는 진영, 마주, 소정이 앉아 있다. 뒤로는 문자 통역 화면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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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30분, 다목적홀에서 상영된 오늘의 첫 작품 <K-ALMA-Q>는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이자 세계 사과의 발원지로 불리던 알마티에서, 사라진 사과의 행방을 물으며 시작됩니다. 도시의 급격한 시장화와 권위주의적 개발이 과수원을 밀어냈고, 사과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사과 동상이 들어섭니다. 이는 분명히 카자흐스탄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서울까지 다다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우진, 서울인권영화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상실에 대해 묻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중에 이야기손님 나영님께서 남기신 말씀 중에 인상 깊었던 문장도 공유드릴게요.
“서울에서의 위태로운 세입자들 같다. 사과가. 또 여기서 뽑혀 나가면 살아갈 곳을 찾아봐야 하고 … 그게 사람뿐만 아니고 사람이 아닌 존재들한테는 더욱 그렇게 사과 같은 위태로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나영, 은평민들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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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99 관객과의 대화 장면. 앞쪽에는 두 명의 관객이 나란히 앉아 있고 저 멀리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과 전광판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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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홀에서 <K-ALMA-Q>의 진행이 계속되는 14시 30분, 야외무대에서는 <WTO/99>가 상영되었습니다. 이야기는 1999년 11월 30일, 4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시위를 준비하며 전개됩니다. ‘시애틀 전투’로 불리는 이 시위를 담은 영화는 국가 폭력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지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시위가 아주 비극적인 결과만을 초래하진 않습니다. 이후 제노바와 뭄바이 등으로 이어진 대안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도 했죠. 이는 “기후 문제, 페미니즘 문제, 자본주의 문제, 이 모든 게 불평등의 문제임을 인식하여 반자본주의 운동으로까지 연결되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습니다.”(민희,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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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와 '한강가에 모여' 관객과의 대화 현장. 무대 위에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총 6명의 사람이 앉아 있고, 뒤에 있는 스크린으로는 문자 통역 화면이 보인다. 사회를 맡은 서인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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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상영된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이하 <나무가 흔들릴 때>)와 <한강가에 모여>는 쫓겨나고 밀려나고 지워지는 존재들을 다룹니다. 재개발을 앞둔 정릉골 주민들의 ‘떠나고 싶지 않음’을, 불편한 것, 더러운 것으로 취급되며 한강변의 낡은 아파트로 밀려난 이들의 ‘삶의 공간에 대한 고찰’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누구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나무가 흔들릴 때> 이지윤 감독은 말합니다.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물씬 풍기는, 사람 냄새나는 영화들의 이야기와 유익한 대화의 시간이 함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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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관객과의 대화 장면. 무대 위에는 왼쪽부터 소하, 수어통역사 님, 이야기 손님 나랑토야 님이 앉아 있다. 뒤 스크린에는 영상 통화를 통해 연결된 조주현 감독님의 얼굴이 문자통역 옆에 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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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 30분 상영된 조주현 감독님의 <쪽>은 인간의 개발 논리에 쫓겨 강제로 이주당한 금개구리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이주 정책을 펼치는 지역자치단체가 교차로 등장하며, 우리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로 남은 고려인(이주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쪽>은 어떻게 ‘이주’가 주는 불편한 어감으로 하여금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조주현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작업 쪽은 처음 저를 불편하게 만든 그런 보호와 통제의 얽힘에서 출발을 하게 됐고 또 이후에 이런 구조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이주정책을 만나면서 지금 보신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주민’이라는 정체성. 그 정체성과 금개구리가 ‘쪽’하고 만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과연 빛만이 존재하는 공간인가, 다시금 고민해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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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파기상접 관객과의 대화 장면. 총 6명의 사람이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다. 가운데에 앉아 있는 임지수 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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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부쩍 낮아진 오후 5시 30분 야외무대에서는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가 상영되었습니다.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생한 학내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로, 당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항해 함께 연대하고 농성하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되돌아 보는 작품이었습니다. 2010년 중후반에 걸쳐 ‘미투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의 반성폭력 투쟁이 줄지어 등장했었죠. 이는 공통의 감각이 된 위계형 성폭력으로부터의 피해가 교수와 남성 중심 대학 사회를 고발하는 아주 큰 목소리가 되어 연대체를 구성한 물결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격동의 투쟁을 겪은 후 그 과정을 함께 헤쳐온 주역들의 이야기이고요. 영화에서 깨진 그릇을 모두가 손모아 이어 붙였 듯이 이들의 투쟁은 빛나는 균열이 되어 이 자리에서 다함께 다시 한 번 반짝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손님으로 함께 하신 연분홍치마 넝쿨님께서는 “학교를 위해 용기내준 분들 덕분에 그 다음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 교수에게 수업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주 유의미한 운동으로 기억될 거예요”라며 파기상접 팀과, 함께 영화를 나눈 관객들의 마음까지도 위로해주는 한마디를 전하시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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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홀에서 진행된 새와 함께 당신에게 관객과의 대화 장면. 맨 왼쪽에 앉은 성원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가운데엔 수어통역사 님, 오른쪽엔 이야기손님 성욱 님이 앉아 있다. 뒤로는 문자통역 화면이 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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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노을이 지는 저녁 시간 다목적홀에서는 <새와 함께 당신에게>가 상영되었습니다. 본 영화는 하비에르 마라데스 감독의 영화로, 감염, 낙인, 격리, 죽음이 반복되는 자리마다 개인의 취약함을 감싸 안는 집단의 회복력을 겹쳐 놓는(성원, 서울인권영화제) 작품입니다. 현장에는 HIV/AIDS 인권행동 알의 성욱 활동가님 참석하여 이야기 나누어 주셨습니다. HIV 감염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낙인이나, 수시로 겪는 부당한 경험에 대한 솔직하고도 담백한 고백들이 이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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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밤,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잇다을 연 관객과의 대화. 주변은 어둡고 문자통역 스크린이 밝게 빛나고 있다. 무대 위엔 혜원과 수어통역사 님, 이야기손님으로 온 향연, 조유나 감독 님이 차례로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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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캄캄해진 저녁 야외무대에서는 오늘의 마지막 작품 <聯; 잇닿을 연>이 상영되었습니다. 조유나 감독의 <聯; 잇닿을 연>은 힘겹게 싸우는 노동자들과, 투쟁하고 연대하는 사람들과, 한 끼 도시락으로 잇닿는 따뜻한 연결성의 언어를 그립니다. 연대자로서 정체성은 어떤 단일한, 고정된 장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사소하고 은밀한 개인이 광장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으로부터의 연결성을 포함한다고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혜원은 말합니다. 우리는 늘 함께 먹는 밥으로써, 주고 받는 대화로써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연결된 공동체의 주체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를 우리는 또다시 이곳 광장에서 연결되어 함께 관람했습니다. 더불어 오늘 현장에는 향연님(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과 조유나님(감독)이 이야기손님으로 참석하여 함께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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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 나무 아래로 '서울인권영화제 30주년 기념 전시, "인영아, 서른 살 생일 축하해"'라고 쓰여진 보라색 현수막이 가로로 길게 천막에 붙어 있다. 천막 안에는 서울인권영화제 과거 사진과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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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6월 6일 토요일,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팔레스타인 코미디 클럽>을 시작으로, <E동의 시간들>, <이슬이 온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 <이드>, <감옥>, <빨대>, <물소가 일어서는 날>, <무토지, 끝나지 않은 투쟁>, <( )자 아이들>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그럼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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